내 아이가 잠든 밤, 나는 남의 아이가 우는 녹음을 듣습니다.

2026.6.19(금)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내 아이가 잠든 밤, 나는 남의 아이가 우는 녹음을 듣습니다.
새벽녘, 집은 고요해진다. 어린 아기와 아내가 잠들고 나면 나는 거실 한켠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일을 펼치고,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녹음 파일을 재생한다.
그 시간은 이상하다. 집은 평온한데, 내 귀에는 누군가의 지옥이 재생된다.
녹취를 듣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맞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어린 엄마가 모욕당하던 그 지옥 안에 함께 서는 일이다. 듣기 싫어 끄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나는 볼륨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문득 가족들이 깰까 봐 이어폰을 낀다.
얼마 전에는 중학생 아이가 보낸 녹음을 들었다. 아이는 맞기 전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누르고 주머니에 넣어둔 모양이었다. 녹음 속에는 아이의 비명과 엄마의 욕설이 오래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퍽, 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 엄마도 아이도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야 녹음은 끊겼다.
또 다른 녹음 속에는 어린 엄마와 아기들이 있었다. 가해자의 욕설은 엄마에게로, 또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아이들의 울음도 커졌다. 이제 막 걷고,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작은 아이들은 무언가를 아는 듯했다. 엄마에게 욕설이 향하자 어눌한 말로 가해자의 말을 막으려 했다.
보이지 않는 음성일 뿐인데 그 어린것의 발 동동거림이 눈에 보인다. 나는 화가 치밀어 핸드폰을 집어던졌다가, 숨을 고르며 깊은 한숨을 쉰다.
동물 보호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정말 사랑해서 그 일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매일 만나는 것은 사랑스러운 모습만이 아니다. 학대받고, 버려지고, 다친 동물들을 본다.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 오히려 사랑받지 못한 존재들의 현실을 가장 많이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나라를 꿈꿨다. 눈물이 닦이고, 억울함이 풀리고, 약한 자가 다시 일어서는 나라를 믿었다. 그러나 내가 매일 만나는 현실은 때로 그 나라와 너무 멀어 보인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얼굴에서, 청소년 미혼모의 불안한 눈빛에서, 어린아이들의 울음에서 나는 자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장면들을 본다.
누군가는 묻는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나를 이런 곳에 두셨느냐고. 그 말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자리로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답을 안다는 것과 아프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무기력하게 기도한다.
“도와주세요.”
그리고 곧이어 묻는다.
“왜입니까.”
도와주세요는 아직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 왜입니까는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말이다.
나는 그 두 말 사이에서 살아간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나라의 약속이 들린다.
하나님나라가 멀어 보이는 자리에서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곳에서는 위로도 조심스러워진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조차 폭력이 될까 마음을 졸인다. 그래서 나는 먼저 듣는다. 녹음을 듣고, 울음을 듣고, 침묵을 듣는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듣는다.
나는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아니 답을 한번 찾아보려 오늘도 나는 새벽의 책상 앞에 앉는다. 누군가의 울음이 끝난 녹음 앞에서 조용히 기도한다.
‘도와주세요.‘
’대체 왜입니까.‘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고는 또,
’도와주세요.‘
고개를 들면 집은 여전히 고요하다. 내 아이는 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딘가의 아이는 아직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