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7일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피가 묻은 베개가 있었다.
그 곁으로는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아이가 그곳에서 잠들고, 눈을 뜨고, 또 하루를 견뎌 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방은 엉망이었다.
버려진 물건과 생활의 흔적들이 뒤엉켜 있었고,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을 눌렀다. 바깥 기온은 40도에 가까웠다.
방학 시즌이라 일정이 유난히 몰려 있었다.
그날도 예정된 일들이 있었지만 모두 뒤로 미뤘다.
곧 다시 다른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러 떠나야 했지만,
그 전에 이곳을 모두 정리하고, 아이가 안전하게 머물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마음을 놓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직원들과 말없이 짐을 골랐다.
버릴 것과 가져갈 것.
지난 시간을 남겨 둘 것과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갈 것.
무엇 하나 가볍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버리라고 했다.
새로운 거처까지 가져가지 말자고, 여기서 다 정리하자고 툴툴거렸다.
우리는 이사를 하는 중이었지만,
나는 한 사람을 처절했던 시간 밖으로 꺼내고 있다고 믿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손은 더러워졌고 숨은 차올랐다.
잠시 멈추고도 싶었지만 오늘 안에 반드시 끝내야 했다.
오늘만큼은 이 아이가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서
잠들었으면 했다. 그곳에 다시 남겨 둘 수 없었다.
새로운 보호 거처로 짐을 옮겼다.
잠잘 자리를 만들고, 이불을 펴고,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채웠다. 깨끗한 베개도 놓았다.
비어 있던 방이 조금씩 사람이 살아갈 자리로 바뀌었다.
오늘 밤은 편히 잠들기를 바랬다.
문밖의 발소리에 놀라지 않기를 바랬다.
잠이 들 때까지 혼자 울지 않기를 바랬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는 눈물보다 웃음이 많기를 바랬다.
사랑을 받을 때마다 이유부터 묻지 않기를 바랬다.
행복해질 때마다 자신에게 그래도 되는지
확인하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참 피해자들한테 바라는 게 많다.
하루 종일 내 곁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대표님 왜 이렇게까지 저를 도와주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말해도 넌 잘 모를 거야.”
사실은 몰라도 괜찮았다.
이유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고마움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젠가 갚아야 할 빚처럼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했다.
그저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였으면 했다.
안전한 방을 누리고, 따뜻한 이불을 누리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준 하루를 온전히 누렸으면 했다.
사랑받는 일이 더는 낯설지 않았으면 했다.
하루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아이가 몇 주 전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그 친구도 대표님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났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아이에게도 삶을 놓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
오늘 하루만 더 살아 보자고 곁에 앉아 줄 사람.
함께 싸워 줄 사람. 끝까지 지켜 줄 사람.
그런 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고마운 말이었다.
어쩌면 내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쓸쓸해졌다.
칭찬을 들었는데 슬펐고, 고마운데 마음 한쪽이 무너졌다.
그 말이 나를 높일수록, 나는 끝내 만나지 못한 한 아이를 생각했다.
큰 칭찬과 깊은 슬픔은 좀처럼 한자리에 놓이지 않는 감정인데,
그날은 두 감정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었다.
나는 아주 큰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그 칭찬 때문에 오래 슬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