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맞은 날보다 맞지 않은 날을 더 자세히 기억했다.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어떤 이는 맞은 날보다 맞지 않은 날을 더 자세히 기억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고 한다.
평범한 저녁이 너무 낯설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고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이 고요함은 언제 끝나는 걸까.
그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그녀는 부엌에서 숨을 작게 나누어 쉬었다.
맞지 않은 날에도 그녀는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폭력이 없던 하루는 평화가 아니라,
아직 내려치지 않은 손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어떤 이는 남편의 발소리를 설명했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만 들어도 몸이 먼저 알았다고 한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 술 냄새가 문틈으로 먼저 들어오던 저녁,
텔레비전 소리를 키워도 가려지지 않는 욕설들.
그래서 그녀는 그 발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소리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아니라,
집에 있던 아이가 다시 숨을 죽여야하는
그 밤이 또 시작되는 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제 얼굴을 닦아줬어요.엄마 울지 말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안에 뭔가가 무너지는걸 느낀다. 다섯살 짜린데.
어른이 지켜야줘야 할 아이가,
어른의 피와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그날 무엇을 배웠을까.
사랑하는 사람은 때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을까.
집이라는 곳이 가장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을까.
울면 더 큰일 나니까 조용히 울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까.
어떤 이는 또 말했다.
“맞는 것보다 무서운 건요,
제가 점점 아무렇지 않아진다는 거였어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아프다.
폭력은 사람을 한 번에 죽이지 않았다.
조금씩 이름을 빼앗고,
조금씩 표정을 빼앗고,
조금씩 내일을 빼앗는다.
처음에는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다음에는 오늘만 넘기자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내가 없으면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내가 맞을 만한 사람인가 보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나 보다,
그렇게 어느순간부터
자신을 미워하고
무너뜨리는 방법을
가해자의 언어를 통해 배운다.
그것이 폭력의 가장 깊은 상처이다..
그 사람이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아도,
문 닫히는 소리에 몸이 먼저 굳고,
누군가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그날 그 밤이 다시 돌아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도
몸은 아직 일어날 일을 기다리듯 떨린다.
폭력은 끝난 뒤에도 잔향을 남긴다.
그리고는 그렇게 오래 남아 사람을 괴롭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딱 하나 다행인것은
그녀는 살아남아 나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떨면서도 자신의 아픔을 마주했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어둠 속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처절한 발버둥같다.
나는 부서진 마음들 사이에서 다시 숨을 쉬려는
작은 요동을 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떨림을 함께 지고
수없이 말해주는 것뿐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만난 세상은 종종 너무 차갑고 쉽게 말한다.
이미 어긋나버린 삶이라고.
당신에게도 원인이 있을 거라고.
더 이상 남은 희망은 없을 거라고.
그런 사람들에게 아직 희망을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세상은 깨어지고 상처 난 것들을 보며
이미 끝난 것이라 고개를 돌린다.
우리는 참 처절한데,
그 처절함마저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들이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구경꾼들의 조롱같은
말들 앞에서 나는 조용히 버틴다.
아니라고.
아직 아니라고.
아직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나는 오늘도 오래된 문장 하나를 붙든다.
나무에게도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난다고.
또 환상을 쫓듯 하늘을 보다
다시 내 양옆의 그들을 본다.
그리고 금 간 그릇을 보고도 아직 나는
그 안에 물을 담을 수 있다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