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와 저번 주, 나는 계속가정폭력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2026년 3월 31일

이번 주와 저번 주, 나는 계속
가정폭력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피해자라기보다
생존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그들은
우리 단체의 문을 힘겹게 밀고
들어와 내 앞에 앉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확인한다.
불은 켜져 있는데, 왜 이렇게 어두울까.
깊은 한숨이 적막한 공간을 채운다.
조용하다.
그 조용함은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많이 어색하다.
너무 많은 것이 지나가버린 시간 탓일까.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의 눈이 먼저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눈동자이다.
아이의 엄마는
자꾸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습관처럼
자신을 낮춘다.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안다.
그 ‘미안하다’는 말이
얼마나 오래 그 사람을 무너뜨려 왔는지.
이제는 대충 알 것 같다.
나는 매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찮아질 겁니다”라고 말하기엔
그 말이 너무 가볍고,
“이제 안전합니다”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한참을 같이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어색하게 그냥 앉아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감정을 눌러가며,
아이의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하루를 포기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건넌 이들은
살아간다, 살아낸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를 안고 있는 그 손을 보면,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놓지 않는 그 마음을 보면,
‘살아낸다’는 그 말이 참 애석하게도 잘 어울린다.
무엇인가가 다 타버린 듯한 자리에서
나는 그들과 같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
이것이 내가 새로 만난 그 가정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나는 희망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회복이라는 단어도 아직은 너무 멀어 보인다.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고,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런 날은
믿음이 아니라
습관처럼 하나님을 붙잡는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게 언제 끝날까,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바꾸고는 있는 걸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하루 앞에서
나는 이런 질문들을 혼자 꺼내 보다
혼자 답을 내려보다 그러고 있다.
다만 내가 아는 하나는,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게 두면 안된다는것
그리고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불이 다 꺼진 자리마냥 냉기가 돌아도
끝까지 꺼지지 않는 무엇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적고
상가 옥탑에 걸린 십자가를
흘깃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아직은 말하지 못한 채
마음 깊숙한 곳에 곱게 접어 넣어둔다.
언젠가 꺼내게 될지,
아니면 끝내 꺼내지 못할지
아직은 알지 못한 채.
끝내 놓지 않던 그 손들 사이로,
조용히 건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 가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를 않기를
그리고 어떤일은
끝내 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