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곁의 한 사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여러분 곁의 한 사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오후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났다
아이가 내 시선을 따라 시계를 바라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날따라 내가 한 말이 자꾸 나에게 돌아왔다
한 사람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한 사람 옆에 끝까지 앉아 있지 못했다
나는 내가 가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올여름도 나는 전국의 청소년 수련회에 강사로 다녔다
아침이면 낯선 도시의 예배당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교회 이름이 적힌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강당 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찬양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내 이름이 불리면 강단에 올랐다
하나님은 너희 한 사람을 알고 계신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고 했다
아이들은 울었고, 손을 들었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집회가 끝나면 몇몇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선교사님, 저 잘 살아볼게요‘
’오늘 말씀 꼭 기억할게요’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마웠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온 이유가
저 아이 한 명 때문이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같다
수련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에 다시 일어났던 적이 있고, 짧은 집회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믿는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집회가 끝나면 나는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센터에도 청소년들이 있었다
다만 그 아이들은 수련회장에서 만난 아이들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양을 부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아이가 있다
기도 제목보다 오늘 밤 잘 곳을
먼저 정해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에게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부모의 발소리를 피해 숨는 법부터 배운 아이도 있었다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따뜻함보다 긴장이 먼저 찾아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오전 집회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센터로 돌아왔다
점심은 차 안에서 대충 먹었다
목은 쉬어 있었고
오전 집회의 땀 때문에 셔츠는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 상담이 잡혀 있었다.
헐레벌떡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 하나가 먼저 와 있었다
작은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아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톱 주변의 살만 계속 뜯었다
이미 여러 번 뜯었던 자리인지
손끝 몇 군데가 붉었다
나는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아이가 입을 열었다
‘집에 가기가 싫어요.‘
처음에는 그 말뿐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짧은 문장들이 하나씩 이어졌다
문 열리는 소리가 무섭다고 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가 들리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잠을 자다가도 작은 소리에 깨고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골목을 몇 바퀴씩 돌다가
늦게 들어간 날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날 아침 청소년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그런데 그 아이 앞에서는
그 말들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현장에 오래 있다 보면
말들이 때로는 잔인해지는 순간을 만난다.
‘조금만 더 버텨.’
‘다 잘될 거야.’
‘힘내.’
말하는 사람에게는 짧은 위로인데
듣는 사람에게는 그말과는 무관하게 또
지옥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될 때가 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보텨보라는 말이 아니었다
오늘 밤 어디에서 잘 것인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는지
경찰에 신고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지가 먼저였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저녁 청소년 집회 담당자였다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좁은 상담실 안에서
진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결국 시계를 봤다
그리고 아이도
내 시선을 따라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무언가를 들킨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이미 다음 장소로 떠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듣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조금만 더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녁집회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지도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상담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수련회장으로 향했다
차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수련회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찬양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셔츠를 갈아입고
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에는 상담실을 나오고도
마음은 나오지 못한 내가 서 있었다
잠시 뒤 나는 다시 청소년들 앞에 섰다
아이들은 울었고, 기도했다
나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했다
그 시간만큼은
그 아이들에게 진심이고 싶었다
집회가 끝나자 아이들이 찾아왔다
사진을 찍고, 손을 잡고,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선교사님, 다음에도 꼭 와주세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회는 끝났는데
마음은 쉽게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자꾸 오후의 상담실이 생각났다
수련회가 어떻게 끝났는지보다
그 아이가 오늘 밤 어디에서 잠들었는지
자꾸 걱정이 되었다
그 여름 내내 비슷한 날들이 반복됐다
수련회장을 향해 운전하면서 센터 전화를 받았고,
센터에서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다가
다음 집회 출발 시간을 확인했다
집회가 끝나면 다시 현장 상황을 확인했고,
현장으로 돌아오면 다음 수련회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
부르면 가는 사람,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
그게 부르심에 충실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늘 다음 장소로 향했는데
마음은 늘 방금 떠나온 곳에 남아 있었다
강단에 서면 센터가 생각났고,
센터에 앉아 있으면 다음 집회 시간에 쫓겼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시계를 봤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서
다음 지역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많은 곳에 있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있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대표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세요?”
예전에는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은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혹시 나는 너무 많은 곳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다가
정작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십 명 앞에 서는 일은 눈에 잘 보인다.
사진도 남는다 박수도 있다 사람들도 기억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이야기를 두세 시간 듣는 일은
사진으로 남지 않는다
가정폭력 피해 가족과 경찰서를 함께 가는 일도
한밤중에 보호 거처를 알아보는 일도
학교와 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일도
대부분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누구에게 설명할 만한 결과 하나 없는 날도 있다
문제는 그대로이고, 아이는 여전히 불안하고,
엄마는 여전히 울고 있다. 우리는 결국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채 헤어진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 같은 날들
그런 날들이 이상하게 내 마음에는 더 오래 남는다
강단에서는 한 사람을 살리자고 말하면서
정작 그 한 사람 옆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부르심은 더 많은 곳에 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청소년들에게 해야 할 설교는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다.
온전히 한곳에 있기 위해서는
다른 좋은 자리를 놓쳐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떠나면 안 되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에는 한 청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시계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더 많은 곳에 있기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