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진은 지금 공사가 끝난 통합지원센터의 모습이다

한생명복지재단 대표 이효천

첫 번째 사진은 지금
공사가 끝난 통합지원센터의 모습이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은 15년전 나의 첫 사무실
첫번째 사진도 두번째 사진도
시작할때는 역시 텅 빈 공간이다
나는 또 15년을 뛰어넘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올려다본다.
벽도, 강단도, 의자도 없는 자리.
다만 여기에 무엇이 놓이게 될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없이 고개를 든다.
아직 비어있지만 이상하게도
이 공간이 그냥 비어 있다고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의 숨이 닿기 전인데도
이미 무엇인가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지난 시간 나는 매일 저녁이면
공사중이던 공간에 올라와
기도하며 물었다.
“대체 이 곳을 어떻게 채우실 계획 이십니까?“
지금보니 두 번째 사진은
그 질문의 처음이었다.
15년 전,
사무실이라 부르기엔 너무 낮고
공간이라 하기엔 너무 어두웠던
지하실 한 칸.
아무리 청소해도 끝없이 나오던
이름 모를 벌레들과 곱등이 몇 마리
그리고
출산을 앞둔 임산부 몇 명,
집으로 돌아갈 수 없던 청소년 몇 명.
돈이 없어서
계획은 늘 뒤로 밀렸고,
나는 말보다 먼저 몸을 내밀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머뭇거릴 틈도 없어서
그래서 손은 늘 먼저 움직였다
인테리어를 할 생각도 못할 그때
철물점에서 산 스프레이 몇 개로
여기저기 뿌려대며
“그래도 시작은 해야지”하며
혼자 키득거리며 웃던 날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처한 상황은 그랬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마음은 참 그럴듯했다.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더 분명했던 시간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성경 속 노아도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하고.
아직 비가 오지 않는데
배를 만들고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키던 시간들.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설명하지 않으면 더 외로웠을 그 마음.
그럼에도 그가 멈추지 않았던 건
확신이 넘쳐서라기보다,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다시 텅 빈 공간 앞에 서 있다.
15년전보다 이번엔 천장은 높고
창도 크다 햇볕도 잘 드는 자리다.
시간도 변하고 공간도 변했는데
텅빈 공간을 바라보는 내 질문과
한숨은 여전히 같다.
빈 곳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내가 여전히 부르심 근처에 서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시작해도 된다는 것을,
채우는 방식보다
머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번 배웠다
그래서 이 텅 빈 공간이
나는 두렵다 그리고
텅 빈 공간이 여전히 설렌다